안전을 기원하지 말자(초고)

2021. 6. 14. 21:53calico의 공부/글쓰기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업체 관계자가 사죄를 하고, 정부 부처에서는 엄중 처벌과 재발 방치책을 발표하고, 뉴스에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개탄한다. 익숙한 풍경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고, 그 주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다. 비록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언제든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하루하루를 우리는 보내고 있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우리 가족은 작년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작년 봄에 이사할 집을 마련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공사기간은 약 한 달 반 정도였다. 건축사를 찾아 설계와 감리에 대한 계약을 하고, 시공업체를 소개받아 시공에 대한 계약을 했다. 그리고 건축사와 업체 대표, 그리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함께 회의를 했고, 한 두 번씩 공사 현장을 찾아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공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비도 거의 오지 않았고, 업체도 성실하게 일을 해 주었다. 공사는 철거부터 시작되었다. 오래된 벽지, 문, 천정 등이 뜯겨져 나가고, 건물의 속살이 느러났다. 해머드릴이 요란하게 두두두두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고, 그러면서 불필요한 벽도 사라지고, 시멘트 바닥도 모두 철거되었다. 건물을 지탱하는 보와 기둥이 드러났다. 

 

  지은 지 30년이 지난 건물은 설계도가 없었다. 신축 건물들은 의무적으로 설계도면을 구청에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지은 집들은 설계도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설계도가 없다는 것은 집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준다. 수도관이나 전선이 어디로 지나가는지, 집의 하중을 어떤 기둥과 보가 짊어지고 있는지 등을 알지 못하고 공사를 하다 보면, 꼭 배관이 터지거나 전선이 잘라진다. 하수관도 그 굵기, 경사도, 굴절된 정도나 정화조까지 도달하는 거리 등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그래서 잘못 지은 집은 늘상 하수도가 막히고, 냄새가 올라오고, 비가 새고, 결로가 생긴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출발점은 좋은 설계였고, 이후 관리를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했다. 

 

  건축사는 설계도를 그렸다. 철거 전에는 내부만 보면서 대략적으로 도면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면, 철거 후에는 보다 정확하게 건물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건축사와 업체 대표와 계약을 할 때에 우리는 정확한 설계도와 견적서를 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건 까 봐야 알아요”라는 말이었다. 기존 도면이 없기 때문에 철거를 하기 전에는 정확한 공사비 계산이 어렵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철거 후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공사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비용으로만 계약을 했다. 불필요한 추가공사비의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체계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나가며, 거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즈음, 아내는 처가댁 식구들과 공사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날 사고가 발생했다. 

 

  그 날은 주말이어서 공사를 하지 않았고, 인부들도 없는 빈 현장이었다.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현장을 보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는 현장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구경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의례적인 말로 이해했다. ‘건강하세요’, ‘다음에 식사 한번 같이 해요’ 등등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말을 하고 통화를 마치지 않던가? 하지만 사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아내가 리모델링 현장을 안내하던 중, 주차장 뒤쪽에서 부실하게 방치되어 있던 정화조 뚜껑을 밟아, 허벅지까지 정화조에 빠진 것이다. 정화조라니...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 책상 아래로부터 그 진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바지의 축축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웃음이 났다. “네? 아내가 정화조에 빠졌다구요? 똥통이요?” 장모님은 어찌할 바 모르는 딸의 바지를 벗기고, 물로 씻겨 주셨다. 그리곤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 딸에게 입혔다. 장모님은 봄에 입는 얇은 코트만 걸치시고는, 딸을 차에 태웠다. 차 안에 냄새가 진동했다. 누구 한 사람 피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니 아내의 발목에 금이 갔다는 진단이 나왔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었다. 직장에는 병가를 냈고, 일주일 넘게 재택근무를 했다.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도 한 달간 택시비와 병원비가 계좌에서 술술술 빠져 나갔다. 공사 마무리 과정은 볼 수도 없게 되었고, 이사 이후에도 집안일을 할 수가 없어 다른 가족들이 더 고생을 했다. 나는 환자를 돌보며 이사를 하고, 집정리를 했다. 업체 대표의 그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구경하세요”라니... 완전히 자기 책임은 싹 빼는 말 아닌가? ‘다치면 너희들 책임이야’라는 거 아닌가? 공사 현장에 들어가지 말도록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산재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업체는 책임이 없는가?  

 

  아내와 나는 업체에 따지지 않기로 했다. 업체 대표는 공사 중간에 전기 기사님이 정화조 뚜껑을 잘못 밟아 세 번 정도 빠질 뻔 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들 웃으며 넘겼다. 주차장 뒤쪽은 리모델링 공사 범위가 아니었다. 그러니 사실상 발주자(건물주)가 귀담아 들었어야 하는 내용이다. 주말에 일을 하지 않는 공사 현장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는 기본적으로 업체 책임이라 보기도 어렵다. 물론 출입을 금지했다면 좋았겠지만 공사 마지막에 집주인이 들어가 본다는 데 그것을 만류할 이유는 없다. 현장 방문이 처음도 아니었다. 가구나 가전제품의 사이즈를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공사 중에도 매주 현장을 드나들었다.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1층 상가 셔터문 앞쪽의 무거운 대리석 외장재가 약간 틈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뚝’ 하고 부러져 땅으로 떨어진 해프닝도 있었다. 다행히 바로 아래에 폐기물 자루가 놓여 있었기에 지나가던 주민이 다치거나, 상가의 대형 유리창이 깨지거나, 앞에 주차된 차가 손상되는 일은 없었다. 그 부분도 공사 범위 밖이라 사고로 이어졌다면 집주인의 책임 부분이었다. 

 

  공사범위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 업체의 책임인 것도 아니다. 건물의 공사에서는 건축사, 시공업체, 그리고 발주자가 각자의 역할이 있다. 건축사는 발주자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 맞게 디자인하고 설계도를 그린다. 시공업체는 설계를 따르되 현장에 맞춰 최고의 결과물을 낸다. 그리고 보통 발주자는 ‘내 돈으로 공사를 하니 당신들이 알아서 잘 해 주시오’라고 뒤로 빠지기 쉽다. 그러나 공사 중 노동자가 사고를 당해도 그 책임은 업체 대표가 아니라 발주자가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발주자가 공사 견적에 산재보험 등의 비용을 기꺼이 내는 것이 맞다. 공사의 진행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불편과 안전, 그리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까지 신경을 쓰는 게 맞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다친 것이 다행이고, 더 많이 다지지 않은 것이 행운이다. 

 

  뉴스에서 공사 현장 사고 소식이 들릴 때면 이전과 다르게 신경이 쓰인다. 요즘 동네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옆집도 얼마 전 공사를 시작했다. 비교적 작은 공사들이고, 신축보다는 내부 리모델링 공사라 큰 사고 없이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안전모, 작업복 등을 갖춘 사람은 거의 없고, 공사가 없는 시간에도 현장은 거의 열려 있다. 얼마 전 새 아파트에 입주한 가족의 아이가 분전함 뚜껑이 떨어져 한 쪽 눈을 실명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모두 안전불감증이다. 안전을 기원하지만 말고 자신부터 책임을 다 해야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