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동 후생농장 이야기

2021. 3. 5. 13:52calico의 이야기/이런 저런 이야기



길 선생이 남동구 만수2동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38년이었다. 그곳에 땅 수만㎡를 사들여 ‘후생농장’을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이름은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따왔다. 연암은 대중의 자유로운 생산·소비활동을 통한 상공업의 장려와 도시 개조를 주창했다. 길 선생도 만수2동에 후생농장을 세워서 말 그대로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하려 했다. (중략) 길 선생이 이상촌 후보지를 마련한 곳이 남동구 만수2동이었다. 지금의 삼부아파트 언저리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교장이 되기 전 6년간 농부로 지내면서 청년들을 상대로 강습회를 여는 등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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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그늘에서 숨 죽이다 활력 움튼다 - 기호일보

산 밑 이랑진 비탈 마을에는 ‘헤어짐’이 서럽게 배어 있다. 그 멀어짐은 영원한 격절(隔絶)이 아니다. 재회(再會)를 기약한 순간의 석별(惜別)이다. 그래서 그곳의 만남은 더욱 간절하고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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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동 후생농장과 길영희 교장

길영희(吉瑛羲) 선생 하면 누구나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일명‘돌대가리 교장’으로 기억할 것이다. 또는 그 학교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무감독 시험을 창안해 시행했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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