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4. 18:07ㆍcalico의 이야기/이런 저런 이야기
만수4동 대토단지.
구전으로 '인수마을'이라 부르고, 마을 가운데에 인수어린이공원이 있다. 마을 옆에 인수초등학교가 있다. 그런데 이 '인수마을'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인수마을의 옛 지명을 찾았다. 새골부락이다. 가장 그럴듯한 서술이 소설가 이원규의 블로그에 나온다.
"새골은 만수주공아파트 동남쪽 인수초등학교와 남동정수장 부근이다. 새 조(鳥)로 썼으나 '억새풀'에 남아 있는 풀을 나타내는 우리말 '새'에 연원을 두는 설이 유력하다. 풀 많은 마을이라 '새곡'이라 했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짐작으로 의미가 변하는 민간어원설에 의해 조곡(鳥谷), 조동(鳥洞)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필자 선친을 비롯한 1세대 인천향토사가들의 견해이다."
https://cafe.daum.net/novelistleelove/3m5G/216
인천일보 연재 인천지명고 38 만수동(2016.4.29 수정)
#37 구월동 14.4.25 게재 2016.4.29 수정 소설가 이원규의 인천 지명 考 38 14425 풀 무성한 새골, 둥근 골짜기 담방이, 만수동 비리고개-비탈진 고개로 국어학적 해석 힘을 얻어 남동구 만수동(萬壽洞)은
cafe.daum.net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405
둥근 골짜기 담방이·풀 많던 새골 일제때 "오래살라"며 만수동으로 - 인천일보
남동구 만수동(萬壽洞)의 경우 조선시대에 인천도호부 조동면(鳥洞面)에 대부분, 또는 일부분이 남촌면에 속해 있었다. 담방이, 새골, 산밑말, 장승백이, 구룡촌 등 자연취락을 형성했다. 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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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동은 원래 조동면(鳥洞面)이었다. 조동면은 남촌면과 함께 남동구 이름의 한 축이다. 남촌면의 '남'과 조동면의 '동'이 합쳐져 남동구가 되었다. 그런데 조동면은 원래 '조곡'(鳥谷)에서부터 왔다. 그리고 여기서 '조'는 원래 새 조가 아니라 풀을 의미하는 '초'(草谷)가 더 의미에 부합한다는 것이 블로그의 내용이다.
만수동은 원래부터 있던 이름이 아니라 순전히 일제 시대에 편의상으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1917년 발간된 [신구대조 조선전도 부군면리 동명칭 일람]이라는 책에서 부천군 남동면(조동면) 조곡리와 담방리를 만수리라고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다.
만수동이 고향인 약사이자 문인 김사연 씨는 지역에 대한 여러 가지 글을 쓰고 있다.
https://www.incheon.go.kr/goodmorning/GOOD010501/view?nttNo=2040977&curPage=1&srchKey=&srchWord=&srchCategoryCode=&srchPblicteIssnoCode=202008
>Home>기사보기>사람 | 굿모닝인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인천-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2020-07-31 2020년 8월호 11대째 태를 묻어온 인천 글 김사연 내 고향은 11대를 살아온 남동구 만수동 369번지, 샛골 부락이다. 내 어릴 적 만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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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바로 새골 부락이 고향인데... 수인산업도로로 새골부락이 갈라지고, '새골 윗말'이 현재의 대토단지, 즉 인수마을이 된 것으로 설명한다.
아, 인수마을의 옛 이름은 새골마을, 새골부락, 새골 윗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수마을이란 아마도 '수인산업도로'의 '수인'을 '인수'로 바꾼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인의 추론이 역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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